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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화장실 이야기
<그 때 그 뉴스> 1904년 우리나라 첫 공중화장실 등장 본문
[책갈피 속의 오늘]1904년 국내 첫 공중화장실 등장
화장실, 변소, 뒷간, 변방, 측간….
화장실을 일컫는 단어들이다. 휴∼, 이름만 들어도 냄새가 난다.
1880, 90년대만 해도 한성(서울) 거리는 오물투성이였다. 여기저기 몰래 ‘실례’를 해 놓은 사람들 때문에 늘 악취가 진동했다.
당시 집집마다 측간(변소)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거리에는 공중변소가 없어 급하면 아무데서나 볼일을 보기 일쑤였다. 요강에 오물을 담아 놓은 뒤 청계천에 살짝 흘려보내기도 했다.
아예 청계천에서 직접 볼일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죽하면 순사(경찰)가 청계천 근처에서 단속에 나섰을까.
독립신문은 1897년 길거리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나라에서 ‘공립 뒷간(공중화장실)’을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경무청에서는 어른 아이를 막론하고 일절 길가에서 대변을 못 누게 하는 칙령을 내렸을 뿐 공중변소가 설치되진 않았다.
공중변소가 처음 생긴 것은 1904년(광무 8년) 6월 21일이다. 한성 거리의 대대적인 정비를 위해 ‘위생청결법’이라는 게 만들어졌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①각 호주에게 매일 쓰레기를 소제(청소)케 하되 준수치 않는 자는 엄벌에 처한다.
②분뇨통을 분급(나눠 줌)할 것이니 법에 의하여 시행케 하도록 한다.
③우물의 불결로 질병이 발생하니 금후로는 우물을 청결케 한다.
④공중변소를 만들 것이니 모두 그 변소를 이용하고 가로변의 방뇨는 엄금한다.
이 위생청결법이 시달되고 나서 남문 밖과 동문 밖의 한 모퉁이가 오물기지로 선택됐다. 또 인분 회사인 ‘한성위생사’를 설립해 거리 곳곳에 설치된 공중변소에서 나오는 오물을 차로 운반하게 했다.
이 광경을 보고 미국에서 온 의사 겸 선교사인 호러스 앨런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악취를 풍기는 대열과 마주치면 그 악취를 좀처럼 잊지 못하기 때문에 외국인 방문객에게 조선은 오물과 악취의 나라라는 씻을 수 없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예인선의 썩은 오물에서 가스가 발생하며 다리 위에 있는 통행자들을 질식시킨 바 있는 옛날 시카고 강의 악취처럼 유독하지는 않다.”
하기야 미국이나 한국이나 오물 냄새가 어디 큰 차이가 날까. 고약하긴 마찬가지였을 텐데….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동아일보 2007.06.21 03:01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