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화장실 이야기

<그 때 그 뉴스> 희로애락은 괄약근에 달렸다, 시진핑의 ‘화장실 혁명’이 바꾼 중국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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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뉴스> 희로애락은 괄약근에 달렸다, 시진핑의 ‘화장실 혁명’이 바꾼 중국

빅용가리 2022. 9. 29. 23:14

한겨레21 [북경만보] (2020. 7. 23.)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54881.html
함께 볼일 보는 ‘니하오 화장실’에서
무선인터넷 있는 ‘제5공간’까지,
중국 공중화장실 변천사

 

희로애락은 괄약근에 달렸다, 시진핑의 ‘화장실 혁명’이 바꾼 중국

한겨레21 [북경만보] 함께 볼일 보는 ‘니하오 화장실’에서 무선인터넷 있는 ‘제5공간’까지, 중국 공중화장실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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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중국에 처음 오는 사람들에게 항상 이런 말을 했다. 중국에서 살아가려면 세 가지 ‘중국 특색’의 문제에 조심해야 한다고. 그 세 가지란 ‘중국식’ 길 건너기, 가짜 돈, 화장실이다. 물론 모두 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차이나’ 시절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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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자마자 귀국 결심을 하게 한

20여 년 전 중국에 도착한 첫날, 나는 가장 먼저 ‘화장실’ 문제와 맞닥뜨렸다. 6층 맨 꼭대기 층에 있는 방을 배치받은 뒤, 김치·고추장·참치캔 등 한국의 동네 슈퍼마켓이 통째로 든 거대한 이민가방을, 공항에서 만난 한국인 남학생 세 명의 도움을 받아서 낑낑 메고 올라갔다. 비지땀을 흘리며 방에 도착하고 보니, 문이 활짝 열렸고 그 안에 인부 서너 명이 담배를 피우며 방 안 곳곳을 수리하고 있었다.무엇보다 나는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하지만 화장실 안과 밖에 인부들이 있었다. 각 층에 있는 공용화장실도 문이 잠겨 있었다. 방광이 터질 정도는 아니라서 인부들이 가기를 기다렸다. 두 시간 정도 지나, 일을 마친 인부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참 하더니, 멍한 내 표정을 보고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공구통을 들고 사라졌다. 잽싸게 문을 닫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날 나는 밤새도록 머리를 쥐어뜯고 울부짖으며 ‘내일 첫 비행기로 다시 돌아가자’고 다짐했다. 화장실은 끔찍했고, 물도 나오지 않았다. 추측하건대, 인부들이 나에게 했던 말은 ‘당분간 화장실은 사용할 수 없고 물도 쓸 수 없으니 대책을 강구하라’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공사는 사흘 뒤에야 끝났고, 그사이 내가 어떻게 ‘신체를 통제’하며 살았는지는 구차하고 구질구질해서 생략하기로 한다. 공사가 끝난 날 저녁부터는 밤새도록 화장실을 청소하다가 너무나 더럽고 서러워서 눈물이 우박처럼 떨어졌다. 맨정신으로 잠잘 수 없어 아직 풀지도 않은 이민가방을 펼쳐, 옷들 사이에 고이 모셔둔 팩소주 하나를 꺼내 다 마신 뒤에야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서너 달 지난 늦가을, 혼자 기차를 타고 황제들의 여름 피서 산장으로 유명한 허베이성 청더로 여행을 갔다. 점심을 먹고 돌아다니는데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물어물어 공중화장실을 찾았는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때는 공중화장실이 유료였다. 차례가 되어 5마오(당시 환율로 약 50원)를 내자 문지기가 사각 휴지를 가리키며 분홍과 빨강 가운데 골라서 가져가라고 했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화장실 휴지 색깔을 골랐다. 분홍을 고른 뒤, 문지기에게 ‘깨끗하냐’고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화장실’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진짜냐’고 한 번 더 물어보는데 내 차례가 와서 바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오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이시여! 내가 지금 들어온 곳은 대체 무슨 세계란 말입니까?’화장실 안에는 대여섯 명이 줄줄이 앉아 각자 볼일을 보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여성은 나에게 “니하오! 너 외국인이지? 밖에서 하는 말 다 들었어”라며 반갑게 인사까지 건넸다. 또 어떤 여성은 빨간색 휴지를 손에 쥔 채 신문을 읽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수랴. 내가 앉을 자리만 깨끗하다면, 나도 그들 옆에 나란히 앉아 ‘니하오!’라고 인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앉아야 할 자리는 한바탕 폭탄이 떨어진 ‘전쟁터’였다. 그 뒷이야기도 너무 구질구질해서 생략하겠다. 화장실 밖에 나오자마자 문지기에게 “거짓말, 더러워 죽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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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한 방울 삼킬 수 없었던 기차간
 
몇 년 뒤, 설을 앞두고 동네에서 삼륜차 인력거를 몰던 왕씨네를 따라 그의 고향 내몽골 츠펑으로 가는 귀성열차를 탔다. 그 기차는 내가 지상에서 겪은 최악의 지옥이었다. 한 치 틈도 없이 인간 콩나물이 빽빽하게 들어찬 기차 안에서 숨 막혀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화장실 안에도 서너 명이 서로 등을 맞대고 서 있을 정도였다. 일단 자리를 잡으면 더는 공간 이동이 불가능했다. 열서너 시간을 달리는 동안 나는 물 한 모금도, 침 한 방울도 삼킬 수 없었다. 방광을 조절해야 했기 때문이다. ‘화장실 가고 싶다’는 신호가 오면 그야말로 ‘대참사’가 벌어질 판이었다. 나는 그날 처음 중국 인민이 아주 ‘위대하다’는 걸 깨달았다.
 
인도 배낭여행을 다녀온 친구는, 기차를 타고 가다가 철로변에 태연하게 엉덩이를 까고 볼일 보는 인도인들을 보고 처음에는 ‘경악했다’가 그다음에는 ‘경이로웠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그 친구가 내가 18년 전에 탔던 중국의 설 귀성열차를 탔다면 ‘인도에서의 깨달음’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화장실 철학’을 터득했을지 모른다. 그 기차를 탄 이후, 나는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기차를 타본 사람과 안 타본 사람. 안 타본 사람들은 내 앞에서 감히 인생의 희로애락을 논하지 말라. 모든 희로애락의 근본은 자신의 방광과 괄약근을 조절하는 힘과 기술에 달려 있다.
 
1970년대 중반, 난징의 한 공장에 도자기처럼 희고 연지처럼 발그스레한 피부를 가진 젊은 여성이 신참으로 왔다. 어느 날, 공장에서 새 상품 출시를 앞두고 직원 몇 명을 상하이로 교육 시찰을 보냈다. 그 여성도 일행에 합류했다. 상하이에 도착해 눈부신 마천루 사이를 누비며 구경하고 있을 때, 그 아름다운 여성은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여성은 민망해서 말을 못 꺼내고 있다가 더는 참을 수 없게 되자 동료들에게 ‘화장실 좀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일행은 상하이 거리를 헤맸지만 공중화장실은 찾을 수 없었다. 마침내 한 상점 직원에게 애원해서 직원용 화장실 사용을 허락받은 순간, 여성은 엉엉 통곡했다. 그녀의 바지가 젖어들더니 가랑이 사이로 물이 흘러나오고 바닥이 흥건해졌다.
 
이후 다니던 공장에 여성의 ‘상하이 방뇨 사건’이 널리 회자돼 웃음거리가 되자, 여성은 그 ‘쪽팔리는’ 도시에서 멀리 달아나기로 결심한다. 길은 오직 하나, 멀리 떨어진 다른 도시의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다. 필사적으로 공부한 여성은 대학에 합격해 그 도시와 공장에서 떠난다. 이렇게 ‘상하이 방뇨 사건’은 여성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소설가 예자오옌의 <화장실에 관하여>라는 단편소설집에 실린 이야기다. 1970년대 중반 상하이 번화가에서조차 공중화장실을 찾지 못해 벌어진 ‘참사’가 어떻게 한 사람의 운명까지 바꿔놓았는지를 재미있게 그렸다.
                                            첨단 설비를 갖춘 중국 저장성 타이저우의 공중화장실. 연합뉴스

_______20세기 최초의 문명 충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중국에는 제대로 된 공중화장실이 거의 없었다. 황제가 살던 수도 베이징에도 공중화장실이 없었다. 베이징에는 상하수도 시설이 낙후해 집 안에 수세식 화장실을 둘 수 없었다. 고관대작과 부자는 집 안에 요강을 두고 볼일을 봤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똥장수들이 오물을 수거해갔다. 똥장수는 신중국 건국 초기까지 베이징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노동자 조직인, 똥장수 노동조합을 거느린 막강한 이익집단이었다. 하지만 집 안에 요강조차 둘 수 없었거나 똥장수에게 일정 비용을 낼 수 없었던 일반 서민들은 어디서 볼일을 봤을까?

 

“베이징 거리는 기본적으로 공중화장실이다. 매일 사람과 동물의 분변이 대량으로 쌓여 있다. 중국인은 날이 어두워지면 길거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볼일을 보는 게 습관이고, 심지어 대낮에 가장 번잡한 거리에서 볼일을 보는 사람도 있다.”

1865년 베이징에 최초의 현대 병원(현재의 셰허병원)을 세웠던 영국인 의사 겸 선교사인 존 더전이 1862년 베이징에 처음 도착했을 때 목격했던 ‘길거리 화장실’ 풍경이다.

 

존 더전보다 더 ‘깜짝 놀란’ 서양인은, 1900년 ‘의화단 사건’을 계기로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베이징으로 쳐들어온 8개국 연합군이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등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에 와서 가장 먼저 실시한 정책은 ‘길거리 대소변 금지’다. 그리고 자신들이 관할하는 구역에 공중화장실을 만들었다. 베이징에 역사상 처음 공중화장실이 등장한 것이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당시 베이징 최대 이익집단이던 똥장수 연합회의 조직적인 방해와 파괴 작업으로 공중화장실 운영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게다가 길거리에서 볼일을 보는 게 오랜 전통처럼 굳어져 내려왔는데, 갑자기 쳐들어온 ‘양놈들’이 그것을 금지하자 ‘열 받은’ 일부 군중이 연합군 군인들과 크고 작은 충돌을 빚었다고 한다. 20세기 중국과 서양 세계 사이 최초의 ‘문명 충돌’은 어쩌면 거리 화장실 사수를 둘러싼 문제였는지도 모른다.중국에 그리고 베이징에 진정한 ‘화장실 혁명’이 일어난 것은, 21세기 ‘중국몽’ 시대를 이끄는 시진핑의 등장 이후다.

 

2015년, 중국 옌볜자치주로 시찰을 갔던 시진핑 주석은, 일부 농촌에서 아직도 재래식 화장실을 쓰는 걸 본 뒤 전 농촌에 대대적인 ‘화장실 혁명’을 하라고 주문했다. 2017년, 국가여유국이 중심이 되어 ‘화장실 혁명 3개년 행동계획’을 발표해 화장실을 개선하는 활동이 시작됐다.

 

_______중국인 ‘존엄성’이 빛나는 장소

시진핑 주석의 ‘화장실 혁명’ 선언이 나온 뒤, 베이징에도 2015년 최첨단 시스템을 갖춘, 이른바 ‘제5공간’이라 이름 지은 21세기형 첨단 화장실이 등장했다. 무선인터넷, 전동차 충전 장치,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 시민 편의시설을 갖춘 첨단 화장실이다. 화장실 내부도 ‘번쩍번쩍’하다. 20여 년 전, 청더의 공중화장실 문 앞에서 5마오를 내고 받았던 네모난 분홍 휴지 대신, 새하얀 두루마리 휴지를 무료로 쓸 수 있다.

 

아, 기차도 예전 그 지옥 같은 기차가 아니다.‘중국에는 황제를 제외하고, 인간으로서 존엄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했던 작가 왕샤오보는 ‘개인의 존엄’이라는 짧은 글에서 “중국에서 사람들로 붐비는 기차와 공중화장실에서 개인의 존엄성이란 전혀 없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왕샤오보는 안타깝게도 1997년 45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죽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그는 당시의 글을 수정하거나 폐기해야 할 것이다. 이제 공중화장실은 중국인들의 ‘존엄성’이 빛나는 장소이자, 21세기 시진핑식 중국사회주의 혁명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중국 화장실 혁명이여, 영원하라!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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