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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화장실 이야기
공중 화장실을 예술로 만든 日 프리츠커 대가들프로파일 빅용 ・ 방금 전 본문
日 청소원 일상 담은 영화 '퍼펙트 데이즈'로 주목받는 도쿄 화장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고지)가 정성을 다해 도쿄 시내의 공중 화장실을 청소하는 모습. 지난해 프랑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이다. /티캐스트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 공중 화장실에 대한 멋진 창작물을 만들어 달라는 일본재단의 의뢰를 받은 독일의 거장 감독 빔 벤더스가 빚어낸 이야기다. 묵묵하게 반복되는 삶을 살며 도쿄 화장실을 청소하는 사내가 주인공. 연기파 배우 야쿠쇼 고지(68)가 주연을 맡았다. 빔 벤더스 감독은 도쿄의 공중 화장실을 청소하는 사내를 통해 고독과 단순함이 만들어내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지난 3일 개봉해 상영 중으로 18일 현재 4만명이 관람했다. 독립 예술영화로는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이 영화는 2020 도쿄 올림픽을 겨냥해 기획된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프리츠커상 수상자 4명을 포함해 16명의 저명한 건축가·디자이너가 도쿄 시부야구 일대에 설계한 17개 공중 화장실을 널리 알리려는 일본재단의 기획으로 만들어졌다. 당초 빔 벤더스 감독에게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지만, 현장을 찾은 감독은 “장소를 보존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픽션”이라며 극 영화로 재구성했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 사이에선 안도 다다오, 이토 도요, 반 시게루, 마키 후미히코 등 프리츠커상을 받은 일본 유명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영화 속 ‘퍼펙트 화장실’이야말로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최근 “소셜미디어 해시태그를 통해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를 접한 전 세계 2030 젊은 세대가 몰려들고 있다”면서 “2시간 내내 화장실만 돌아보는 투어에 4950엔(약 4만4000원)을 지불해야 하지만 다녀오고 나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야쿠쇼 고지가 지난해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으면서 현지를 찾는 발걸음이 더 많아졌다.
2013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이토 도요(83)가 설계한 요요기 하치만의 ‘버섯 화장실’은 인근 숲에서 나는 버섯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냄새 나는 화장실이 디자인을 통해 아이들과 지역 주민들이 쉼터처럼 와서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변신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그는 “그동안 공중 화장실은 남자인 나도 가능한 한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세계적인 명성의 건축가들의 작품이기 때문에 화려하고, 복잡하고,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들의 공통적인 목적은 “남녀노소,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모두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자 “안전하면서 지역과 어우러져 쉬었다 갈 수 있는 명상의 공간”이라고 했다.
종이와 목재를 이용한 친환경 건축의 대가로 불리는 2014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반 시게루(68)는 내부가 보이는 ‘투명 화장실’을 설계했다. 그의 ‘투명 화장실’은 도발적인 외관보다 건축가의 고민이 깊이 배어 있는 곳이다. 그는 “공중 화장실이란 단어부터 편하게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내부가 과연 깨끗한지, 안에 누가 있는 건 아닌지 항상 걱정됐었다”고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투명 화장실. 화장실이 깨끗한지 밖에서도 알 수 있다. 사람이 들어가 문을 잠그면 불투명해지는 특수 유리를 사용했다. 밤이 되면 화장실의 불빛이 ‘방범등’ 역할도 한다. 여성이나 노약자들도 심야에 마음 놓고 다닐 수 있게 하자는 의도다.
빛의 예술가 안도 다다오(83·1995년 수상)는 전통적인 일본 건축의 처마 구조를 응용했다. 아름다움만이 목적은 아니다. 처마를 올려 내부의 악취가 빠르게 환기되도록 했다. 일본은 습도가 높기 때문에 환기가 반드시 필요하고, 코로나 감염병 이후 환기는 건축에서 가장 주요하게 고려할 점이라고 했다. ‘빛의 대가’답게 작은 창으로 자연 채광도 누리게 했다. 타원형 돌출 지붕은 비를 피해갈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다. 화장실 이름을 ‘아마야도리’(雨宿り·비를 피해가는 쉼터)라고 붙였다.
1993년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지난달 별세한 마키 후미히코는 ‘오징어 화장실’이라 이름 붙였다. 화장실이 들어선 곳이 ‘문어 공원’이라 불리는 에비스 이스트 공원이기 때문이다. 장소와 조화를 우선하는 마키 후미히코는 화장실이 더러운 곳이 아닌, 즐겁고 개방적인 곳이라는 콘셉트를 강조했다. 중간에 안뜰 같은 정원도 있다. 외부에는 앉아서 쉬는 의자도 함께 설계했다.
이 ‘화장실 프로젝트’는 일본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 창업자의 아들이자 일본재단 고문인 야나이 고지의 적극적인 투자와 진두지휘로 이뤄졌다. 17개 화장실에 들인 비용만 20억2000만엔(약 178억2994만원)이다. 세계적인 건축가와 디자이너에게 의뢰한 비용도 적지 않겠지만, 하루에 두 번씩 청소하며 청결을 유지하는 비용이 상당했다고 한다. 최근 일본재단 발표에 따르면 리모델링 이용자들의 시설 만족도가 44%에서 90%에 육박하고, 공중 화장실 혐오감은 30%에서 3%로 줄었다.
<출처: 조선일보(2024.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