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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셔온 콘텐츠> 화장실을 위한 변(辯)

빅용가리 2025. 3. 4. 08:51

 

“선(先) 커피 후(後) 용변이냐.” “사유재산이라 이용 제한은 합당하다.”

스타벅스가 지난달 화장실 개방 정책을 철회하자, AP통신은 미국 시민들의 반응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매출 부진을 벗어나려 구매 고객에게만 사용을 허하겠다는 조치”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국내 스타벅스 관계자는 “관련 지침은 아직 없다”고 합니다.

화장실 칸칸은 가장 사적이면서 가장 공적인 공간입니다. 세상사도 몰아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소용돌이치는 변기 물처럼 말이지요.

그 소용돌이가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 몰아쳤습니다. 지난해 12월 7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표결이 진행된 날. 호텔은 ‘화장실 이용 불가’ 안내문을 내걸고 집회 참석자들의 출입을 막았습니다. 공중화장실법에 따라 우리는 공중화장실과 개방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누리꾼들은 ‘그럴 수 있느냐’며 호텔 측에 ‘별점 테러’를 가했습니다.

이번엔 인심을 넘어 인권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2년 세계 80억 명 중 43%인 34억 명이 제대로 된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엔은 화장실 이용을 ‘보편적 인권’으로 인식하고 세계 화장실의 날(11월 19일)을 정하기도 했습니다. 연극 ‘달을 묻을래’는 화장실 부족으로 온종일 용변을 참는 인도 여성들을 통해 인권을 조명합니다.

‘뒷간 인심’이라고 합니다. 화장실을 여느냐 마느냐. 사장님들의 마음 씀씀이가 넉넉함과 야박함으로 갈린다는 겁니다. 그런데 화장실 개방은 문만 연다고 되지 않습니다.

사유재산이란 경제적 논리는 화장실 개방과 번번이 부딪힙니다. 지난 설 연휴. 김해관(59)씨는 고향 가는 길에 주유소 화장실을 이용했습니다. 주유소 화장실은 개방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석유사업법 시행규칙). 그런데 그 주유소 화장실이 밤에는 잠겨 있었습니다. 지난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지만, 공중화장실법 개정안은 주유소 화장실의 ‘상시 개방’을 담았습니다. 주유업계에서는 “사유재산인데 24시간 개방 의무는 너무하다”는 반발이 나왔습니다.

‘사유재산’ ‘매출 회복’ 등의 경제적 논리로 7년 만에 없던 일이 됐지만, 애초에 스타벅스가 화장실 개방을 택한 배경은 정치사회적 논리입니다. 2018년 플로리다의 한 매장에서 흑인 두 명이 주문도 없이 화장실과 테이블을 이용한 걸 직원이 제지했습니다. 인종차별과 인권 침해 논란이 불거지자 스타벅스는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줬습니다.

화장실에는 성 문제도 깔렸습니다. 젠더 사회학자 알렉산더 K 데이비스는 『화장실 전쟁』에서 성별 분리 화장실은 20세기 초에 생겼지만 이후 성차별을 오히려 강화했다고 주장합니다. 2016년 ‘화장실법’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회를 통과했습니다. 공공장소 화장실 이용 시 출생증명서 상의 성별을 따르도록 했습니다. 성소수자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며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에도 성중립 화장실인 ‘모두의 화장실’이 생긴 계기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공용 화장실을 불안해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2016년 5월의 서초동 공용 화장실 살인사건이 아른거린다면서요.

집회가 지나가면 인근 지하철 화장실 칸마다 정치적 낙서로 가득합니다. 시청역에서 일하던 김태선 미화원은 “초강력 약품으로 지워야 해서 큰 병이라도 걸릴 것 같다”고 한탄했습니다. 이처럼 이용자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뒷일로 미루니 관리자는 뒷수습이 겁납니다. 그래서 뒷간 인심이 후할 리가요. 서울 개방화장실 중 민간 비율은 22%에 그친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의도 호텔처럼 화장실 문을 닫자니 뒷말이 무섭습니다.

지난달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화장실이 폐쇄됐습니다. 올해 예산 ‘0원’이 돼 청소를 못 해서입니다. 직원들은 인근 화장실을 이용합니다. 그들은 어떤 논리에 밀려 뒷간 인심에 호소해야 하는 걸까요.

김홍준 기획담당선임기자

<출처: 중앙SUNDAY(2025. 2.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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